-[반론]팝칼럼니스트 김태훈씨의 네티즌의 ‘조성민 여론재판’을 읽고-
고인이 되신 최진실씨에 대해서 특별한 애정을 가진 적은 없지만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에 애도를 표할 정도의 연민과 ‘연예인’ 최진실이라는 존재를 인정하는 국민의 한사람입니다.
오늘자(11월 20일자) 경향신문을 읽다가 팝칼럼니스트 김태훈씨가 기고하신 “네티즌의 조성민 여론재판”이라는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김태훈씨의 글에 대해서 좀 다른 입장이 있어 부족하지만 반론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볼까 합니다.
▶ 김태훈씨 기고글 바로가기 - [판]네티즌의 ‘조성민 여론재판’
먼저 김태훈씨가 주장한 글의 요지를 간단히 정리해보겠습니다.
김태훈씨 주장의 전제는 ‘조성민’을 변호할 생각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를 전제로
첫째, 대중에게 노출돼 있는 인물이며 뉴스의 초점이 된 사건의 중심인물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의 타깃이 돼야한다는 상황에 동의한 수 없다는 것
둘째, 부부나 부모․자식 간의 사정은 당사자들 이외엔 모르는 부분이 많으며 성장한 최진실씨의 두 자녀가 미운 부모일지라도 남들의 비난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그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친권문제는 당사자의 문제이며 최종결정은 법원에서 내릴 문제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모호하긴 하지만 인터넷 악플에 대한 우려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저도 인터넷의 과도한 혹은 욕설이 담긴 악플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습니다.
김태훈씨의 글은 조성민의 변호가 목적이 아니며 악플을 동원한 여론재판에 대한 비판인 듯 보이지만 실제로 앞에서 정리해서 밝혔듯 악플의 문제점 지적보다 현재의 ‘조성민 친권 부활 문제’에 왜 특정 유명인사와 국민들이 판단하고 나서고 압력을 가하느냐고 하는 주장으로 읽힙니다.
김태훈씨의 첫 번째 주장인 대중에게 노출돼 있는 인물이라서 ‘조성민’은 비판을 받고 있는가에 대한 질문을 되돌려 하고 싶습니다.
단언하건데 대중에게 노출된 인물이 아닐지라도 위와 같은 논란이 언론을 통해 보도된다면 국민들은 당연히 팔을 걷어부치고 이 문제에 대해서 토론했을 것입니다. 최근 일은 아니지만 70세가 넘은 할머니가 황혼이혼을 청구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분은 공인도 아니고 밖에서 보기에 지극히 평범한 대한민국 한 여인의 삶을 살아온 분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혼을 해야겠다고 선택하셨고 이 부분에 대해서 국민들은 자신의 일과 같이 토론하며 그 속에서 금기시 되었던 부부의 문제를 사회적 문제로 재정립하는 결정적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이번 친권논란은 단순하게 조성민이어서가 아니라 이혼이 늘어나고 더불어 한부모가정이 확대되면서 현실에 맞는 합리적인 법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고 ‘조성민’은 그 토론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고 있는 기폭제에 불과하다는 사실입니다.
더불어 ‘조성민’의 행태는 다른 누구보다 더 논란을 촉발시키기에 충분한 확실한 근거가 존재합니다. 우선 과거 이혼과정을 최진실씨가 한때 연예인 생명이 마감되는 것이 아닌가 할 정도로 노출되었으며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조성민씨였습니다. 그들의 삶을 국민들 앞게 갖다 놓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5년. 우리는 알 수 없었지만 채무 변제를 조건으로 친권을 포기한 후 아이들을 한 번도 찾지 않았다는 것은 객관적 사실이며 이에 대해서 조성민도 부정하는 기사를 본 적이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김태훈씨의 지적대로라면 쌍방의 문제로 협의 조정으로 원만하게 해결하면 될 것을 그는 의논과 협의 보다는 법이란 잣대로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강제조치까지 했습니다. 아이들의 미래를 이야기 하면서 ‘아이들의 현재’에 아무런관심이 없는 무책임한 선택을 했습니다. 법의 잣대를 앞세워 아이들의 현재에 상처를 주고 있는 사람이 바로 ‘조성민’입니다. 결과적으로 친권의 합리적 변화 보다 ‘조성민’이 더 부각되는 것은 그가 선택한 행동의 결과임을 직시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김태훈씨는 글을 통해 ‘악플의 폐해에 피해 받는 조성민을 묘사’함으로써 지금 친권의 합리적인 변화를 위해 토론하는 지금의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훈씨의 논리는 단도직입적으로 지금까지 아동학대나 가정폭력과 같은 집안 폭력을 정당화한 논거로 활용된 아주 보수적인 논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언제나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은 ‘너희가 뭘 아느냐’라는 논리를 대며 때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분명히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사회와 법은 ‘잘 알지 못하는 가정사’에 대해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뒤엎고 합법적으로 개입하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앞서 밝혔든 친권은 당사자의 분쟁이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필수적으로 수정보완이 필요한 법의 일부로 간주되고 있으며 이로 인해 다양한 토론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김태환씨의 주장과 다른 부분입니다. 최종판결 또한 법원의 문제라고 하지만 그것 또한 잘못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우리 법정은 성폭력 사건 등 몇 가지를 제외하고 ‘국민참여재판’제도를 도입하는 등 단순하게 법논리로 접근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감정을 판결에 담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친권 문제는 사회적 변화에 따로 재논의가 요구되는 사안인 만큼 여론의 흐름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에 대해서 특정인사일지라도 입장을 표명할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압력이 아니라 당연한 그들의 권리입니다. 대선에서 연예인이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일치하는 이를 위해서 주장하고 홍보하는 것과 같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물론 일부 네티즌이나 호사가들은 악플을 동원해서 건전하고 합리적인 토론을 방해하고 있긴 하지만 큰 틀에서 진행되는 토론에 따르는 부작용의 일부라고 봐야합니다.
김태훈씨 주장처럼 악플 없는 완벽하게 건전한 토론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사회가 완전사회가 아니기 때문이지요.
짧은 독해력이지만 김태훈씨의 주장과 달리 ‘악플과 지나친 관심’에 상처받는 ‘조성민’이라는 이미지를 설정함으로써 ‘조성민 변호’를 하고 있으며 국민들의 여론을 ‘악플’과 대응시켜 매우 불온한 것으로 만드는 우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한번 생각해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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